다가오는 땅끝 - 우리의 역할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선교전략을 세우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든다. 한 국제 선교기관에서는 1985년에 벌써 외국인들, 즉 디아스포라에 대한 선교전략을 세운 바가 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이것을 가시화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해 왔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지에 체류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 중에는 소위 선교하기 어려운 지역인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그 문화를 알고 언어를 아는 선교사들을 배치해서 집중적으로 선교를 하는 전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같은 선교전략은 우리나라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외항 선교회에서는 외국 선원들을 위하여 선교를 꾸준히 해왔지만 그것은 한국 내에 체류하는 외국사람들을 향한 선교전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과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도 역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선교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서서히 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단체는 중국에서 오는 조선족들을 위한 선교를 위해서 사람을 동원하고 장소를 마련하는 일을 주로 할 수 있는 국내 거주 선교사를 위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일은 비교적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고, 늦게나마 한국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선교단체가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다양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선교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인도나 필리핀, 나이지리아 같은 경우는 본국에 있는 여러 부족들을 향해서 타문화 선교를 계속 해왔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필요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내에 들어와서 불법 내지는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많은 종류의 외국인들을 향해서 교회가 이들을 등한시하거나 선교단체가 더 이상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선교전략적 타당성
첫째로, 일부 외국의 경우 벌써부터 유학생이나 이민 온 사람들을 향해서 선교를 해왔다. 이주자들의 경우는 그 자국을 다시 선교하기 위한 선교세력으로 재투입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미 이주해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로 타당성이 없다. 물론 유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자국 내에서 중요한 지도자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유학생보다는 노동자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언젠가 본국에 돌아갈 입장에 있다. 그래서 이들을 잘 전도하고, 잘 훈련시켜서 지상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 나라에 다시 돌아갔을 때에는 중하류층에 복음을 심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맥게브란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중류층에 복음을 전했을 때 이는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고, 하류층으로도 내려 갈 수 있다.
둘째로, 우리나라에 와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 방글라데시인, 네팔인, 파키스탄인 등이 있다. 이들 나라는 대개 창의적 접근지역이며, 우리 선교사들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마음놓고 선교를 할 수 없는 지역들이다. 한 사람을 선교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원이 소모되는지 모르는 일이다. 특히 이들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하류층이었지만 교육적으로는 고학력 출신들도 전체 노동인구의 58%나 된다 할 때, 더욱더 이들을 복음화해서 자신의 나라에 들어가서 지도자로 삼는다는 것은 타당한 전략이라고 봐야만 하겠다.
세째로, 성경적으로 봤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을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레위기 19:33-34절까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타국인이 우리 땅에 왔을 때 그를 학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 타국인을 자국민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선교전략을 세워서 이들을 학대하지 않게끔 조치를 취하고 더 나아가서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만 될 것이다. 이것은 외국인을 향한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복음화하기 위한 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충족되어야만 될 것이다.
선교전략의 현실화
첫째로, 조직적인 면이 정비되어야만 한다. 여기서는 중국 조선족 사역을 위해서 만든 조직이 매우 좋은 예(例)가 될 것이다. 중국 사역을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 전임사역자가 있어서 그 사역에 참여하고자 하는 교회나 선교단체들 사이에서 조정관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한 단체의 사역이 아닌, 한국교회의 사역이 되도록 승화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다른 외국인 사역을 위해서도 역시 여러 단체 내지는 교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관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단체는 자신들의 단체의 힘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교회가 자기 부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들을 교회에 영입한다든지, 또 그들만 모이는 새로운 그룹을 조성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교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둘째는 이들을 위한 전문선교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한 국제 기관에서는 태국에서 사역을 한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이 본국인 미국에 돌아와서 미국에 있는 태국사람들을 향해서 선교를 했다. 또 이들 국내 선교사들은 미국에 있는 대학생들, 혹은 유학생들을 위해서 선교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우리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체류자로서 - 그들은 열세에 몰려 있다. 그들에게 우리의 강세를 이용해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쭉정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그들의 민족성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인력들이 이곳에 배치되어서 그들을 이해하는 가운데 사랑하며 성육신적인 자세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게 된다면 이들은 마음 문을 열고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더 나아가서 훈련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안식년을 맞아 들어오는 선교사라든지 전문 선교기관에서 인력을 동원해서 이런 외국 근로자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한 교회가 그런 사역을 하고자 할 때 전문 선교단체들은 그 교회에 이 특수사역을 위한 사역자를 미리 훈련시켜서 최소한도 타문화권의 이해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일방적인 태도로서 그들에게 접근한다면 그들은 많은 상처를 안게 될 것이고, 오히려 덕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인력양성이 중요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우리가 사역을 하고자 하는 이 사람들도 역시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에 왔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반면에 한국교인들은 일단 교회만 들어오면 사람들에 대해서 분별력 없이 대하고, 심지어는 너무 무분별하게 물질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물질적인 도움에 있어서는 꼭 필요할 때 소정의 금액을 주었을 때는 매우 유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것을 상습적으로 하게 한다든지 혹은 그쪽의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좀더 빨리 분별해서 가짜 크리스찬을 만드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모슬렘들에 대해서 눈을 떠가고 있고, 또 미전도 족속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사실 선교단체나 선교에 앞장선 교회들 위주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이럴 즈음에 우리는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서 외국으로 파송하는 선교회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 앞에 다가온 땅끝의 사람들을 향해서 더욱더 눈을 떠야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너무 쉽게 여겨지기 때문에(실제로는 쉽지도 않음) 혹은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평가 때문에 내적인 충실을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마다 힘 닿는 데까지, 그리고 선교단체들은 이런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어느 한 단체도 이것을 다 할 수 없다. 어느 한 교회도 이것을 다 감당치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인력과 재력, 그리고 우리의 선교적 전문성을 합하여 협력을 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복음화 운동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30여년 이상 중동지역에서 모슬렘 선교를 한 선교사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몇 명이나 그 사역을 통해서 모슬렘들을 구원을 시켰습니까?" 그 선교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몇 명인지 모릅니다. 저는 단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30년 이상 이같이 제 생애를 쏟았을 뿐입니다. 그 결실은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실로 모슬렘 사역은 그것이 중동이든 북아프리카이든 어디에서든지 어려운 일이다. 이런 대답은 비단 모슬렘사역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힌두교 등 종교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자기가 속한 문화권에서 뿌리가 뽑혀서 이곳에 이동해온 이 사람들은 역시 복음과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서 모험을 해 볼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가 다음과 같은 접근을 한다면 매우 유익하게 될 것이다.
우선 어느 나라 사람이 어디에 얼만큼 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이들에 대한 전도, 제자훈련, 그리고 지도자 훈련과 이들이 본국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훈련을 개발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서 이들로 하여금 사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평신도들은 자기 가정을 개방해서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따뜻한 가족의 품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맛보게 한다든지, 혹은 구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들어줄 수 있는 열린 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내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각 교회마다 소수의 가정은 이러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약간의 사역지침에 대한 안내 및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사역자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한 자료들을 공급해야 될 것이다. 특히 그들에 속한 문화권에 알맞는 자료들은 매우 유익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변증론적인 자료들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상황화된 자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지에 나가있는 선교사들과 국내 사역자가 함께 그 나라말로 이런 자료들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1989년 데이빗 피카드가 쓴 기사를 일부 참작했음).
끝으로 이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문지상이나 매스콤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일들이 신문에 과대하게 공개된다면 외국근로자의 해당 정부들이나 혹은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파악해서 이들이 귀국하는 즉시 체포해서 재개종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은밀하게, 그리고 내실 있게 조직적으로 해 나가야될 일이다. 부디 한국교회가 이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드높이며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