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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미스바설교

새벽 - 성품의 힘 벧후 / 1:5-11

성품의 힘  

                                                      

말씀:벧후1:5-11

축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 주변에는 좋은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관계의 변화를 통해서입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성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영적, 정신적, 심지어 육체적인 고통이 찾아옵니다. 인간관계가 막히면 기도가 막힙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높습니다.

우린 싫든 좋든 인간관계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는 성품입니다.

삶의 중요한 문제는 성품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초기에는 내가 달려가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능력으로 더 많은 능력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깊이가 더해 갈수록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성품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신앙의 목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건축해야 할 7층짜리 빌딩을 소개했습니다.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강조하고 있는 7가지를 단계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7층 건물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바울은 갈5장에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소개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여기에서도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맺혀져야 할 성품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복음서에서 한 서기관이 주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핵심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 둘째 이웃사랑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간단하게 답하셨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인의 성품l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일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는가를 물으십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의 도전중 하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 모였는데, 그리고 모두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데 나중에는 갈등과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내게 딱 맞는 사람을 붙여 주신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5절에 “너희가 더욱 힘써” 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 할렐루야 하고 막 달려간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베드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은 그랬습니다. 앞뒤 볼 눈이 없었습니다. 신앙의 연약함이란 전후 좌우를 보는 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아주 신중하게 신앙생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믿음에 덕이 있어야 한고 덕도 그냥 덕이 아니라 지식을 덧붙여야하고 지식 안에 절제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절제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거기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만 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가 있지 않으면 그 경건은 위선입니다.

형제우애도 진정한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들은 그가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뼈아프게 체득한 교훈들입니다.

우리가 싸워할 싸움은 내가 얼마나 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를 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함께 가정을 이룬 부부도 어떤 경우에는 일평생 몸살을 하고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저울질 하시는 것은 얼마나 품을 수 있을 것인가를 보십니다.

품는 용량입니다. 인격의 그릇입니다. 부모들이 내가 낳은 아이지만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 때 부모의 용량이 측정되는 시간입니다. 해괴망측한 옷을 입고 나오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권한으로 그 옷을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옷만 잘린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그런 옷을 다시는 입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다른 영역에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쳐지겠습니까?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골반바지를 언제까지 입겠습니까?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품는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는 돌아옵니다. 그러나 품어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이미 부모의 마음을 떠났습니다.

성품은 가족관계 안에서 훈련해야 합니다. 신앙은 좋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부부관계는 전쟁을 치루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데 가정에 돌아가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성품이 따로 놀더라는 것입니다.

벧전4:8절에서 “무엇보다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가려주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은 용납입니다.

들추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죄의 본성은 들추고 싶어 합니다. 노아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수치를 감추기보다 떠들었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불러왔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렇다면 덮으십시오 그것이 축복된 관계의 진수입니다. 사랑의 중요한 특성은 상대의 약점을 품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우린 모두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 말은 우린 누구나 연약하고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내가 남을 용서해주어야 할 때가 있지만 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용서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용서하지 않은 마음은 암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모두는 성품에 있어 자신 있게 말할 사람 없습니다. 평생을 통해 다듬어 가야 할 과제입니다.

베드로는 7가지를 차례차례, 단계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품이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누가 나를 가장 실망시키는 사람입니까?

아마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받아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할 일은 다른 일이 아니고 성품 훈련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품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기 싫고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얼굴을 비비며 사랑이 드는 순간 까지 나아갈 것인가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만약 피해 버리고 내가 좋아 하는 사람, 나를 좋아만 해 주는 사람 속에서 살기로 결단한다면 영원히 유치원 수중의 성도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지고 갈 것은 변화된 성품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천국에는 관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누리지 않는다면 세상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싶어 합니다.

천국생활을 지금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조폭들의 세계를 보면 교회와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교회가 조폭세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목이 잡혀가도 조직원들은 충성을 다하고 출옥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술 한 잔이면 끝을 내기도 합니다. 복음은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살게 만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성품입니다.

기적중 기적은 성품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공동체 안으로 부르신 이유는 나의 모난 성품을 다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부러운 사람은 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7층 맨션을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1층만 짓다가 볼일 다 보지 않기 바랍니다.

. “나는 주님을 닯고 싶습니다” 이 열망을 잃어버리지 않기 바랍니다. 성품보다 더 큰 파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