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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미스바설교

청년 -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요5:19-30

하나님의 아들, 예수

말씀:요 5:19-30

우리 인간이 몸으로 느끼고 보고 듣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시속 1,670km 라는 어마 어마한 속도로 돌지만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인식하는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나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차이가 있기때문입니다.

또한 죄로 인해 영적인 단절이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자기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하셨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하였고 / 종교지도자들은 신성모독이라 경악하며 죽이려 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 하였습니다.

청년 여러분!

예수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것/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보면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확증시켜 주는 것들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신약 성경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여러 곳에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태어난 장소,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예언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중심을 잡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이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랑은 없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는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생명"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21절, 24절, 25절,29절, 모두 생명이 강조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살아있다 해도/ 영적으로 죽은 자는 죽은 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단절된 삶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내가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인생은 아웃사이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내 안에 생명 되신 그리스도가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삶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성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립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내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감동이 일어납니다.

25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아있습니까?

영생이란 예수의 생명과 접촉된 순간부터 찾아오는 축복입니다. 이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도 독특한 영적인 경험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내가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면 힘을 얻지 못합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기쁨이 없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 사람이기 때문에 영적인 갈급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문제가 일어날 때 하나님에게로 엎드립니다.

세 번째로 예수는 심판주가 되십니다.

22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절입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30절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리스도는 인류의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공의롭지 않은 것들로 인해 낙심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심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란 말은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가 심판주라는 말은 주님은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뜻입니다.

태초라는 시간의 시작부터 인류의 역사의 시간을 마감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삶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잠시 나그네로 살다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판주의 몫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셨던 그 수많은 기회들을 거부한 댓가는 비참합니다. 가짜와 진짜는 구분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평소에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죄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내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나의 생각이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날마다 심판주 되신 그리스도를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심판 주 앞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것 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시간은 종말론적입니다. 종말의 심판자로서의 예수를 온전히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위선이고 거짓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초점을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 우리의 모든 비밀이 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의 모든 풍성함이 담겨있습니다. 그 분과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신앙이란 그 분 안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 분을 그 분으로 바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늘하루도 주님 안에 있음으로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