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미스바설교

새벽 - 당신은 제자입니까? /요 6:66-71

미스바 2008. 6. 24. 13:40

                                    당신은 제자입니까?

 말씀:요6:66-71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많은 시간과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제자"였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개인기도 시간을 빼고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목전에 둔 긴박한 순간에도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디베랴 바닷가로 도망간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제자로 시작해서 제자로 끝났습니다.

주님은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셨습니다.

66절을 보면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 자칭 제자들은 있었습니다. 특히 오병이어 사건을 기점으로 제자들의 수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일시적으로 따르다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뼈있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사건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관계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이 낫거나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건은 늘 계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입니다.

관계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인격적 결합에 의해 따르는 것입니다. 사건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정확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따르는 대상과의 인격적 관계가 맺어 졌다는 것입니다. 69절에 이어서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믿고 따라야 할 인격적 대상이 분명합니다. 무리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무척 당황스러운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내가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12명이란 최측근 중에 측근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가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따르는 외적인 행동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배신자 유다는 처음부터 배신하기 위해 위장 전입한 제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신앙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격렬하게 달려듭니다. 우리에게 경종을 주는 것은 제자도의 진정성에 대한 반복적 확인입니다.      자기 신앙에 대한 계속적 점검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참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구원의 확신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 신자들입니다. 출생의 문제가 분명하지 않으면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구원의 확신만을 보증수표로 믿고 사는 신앙도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천국은 보장된 것으로 믿고 만족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믿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본적이 없습니다.

제자의 삶을 가로막는 걸림돌 중에 또 하나는 형식주의적 신앙입니다. 오래 다니다 보면 처음의 감동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이 없습니다. 선 줄로 착각합니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7:12,13)

복음서 도처에서 주님은 아주 강경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왜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 부터 비난의 돌팔매질을 받고 있습니까?

기독교가 무엇 하는 곳이고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무엇 하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좀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모두 예수의 제자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어떤 목적으로든지 다니다가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은 사회생활의 일부로만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오해는 특수한 사람들을 제자로 보는 관점입니다.

전문 사역자들만이 제자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영어로 직업이 라틴어로 소명에 해당되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들의 진짜 직업이 있다면 바로 "제자"입니다.

제자로서 사업을 하고 제자로서 학교를 다니고 제자로서 직장생활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는 타이틀이 아닙니다. 걸맞은 헌신이 관건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다니고, 그냥 예배드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왜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집니까?

구약의 이름난 사사 삼손은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능력을 모두 값싸게 팔아 넘겼습니다. 결국 힘없이 놀림을 받으며 두 눈을 빼앗기면서 죽어갑니다. 요즘 가장 심각한 것은 세상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너희도 가려느냐?" 세상의 사람들이 가는 길로 너희도 가려느냐?

제자란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타의에 의해 잃어버리고 상실하는 삶이 아닙니다. 자의로 내어 버리는 삶입니다. 생명 까지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이제 말보다 행함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빛과 소금의 특징은 소리가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소리 없이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제자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아보았는가?

질문해 보십시오.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축이 옮겨져야 합니다. 나를 위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내가 무엇을, 얼마나 희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진정한 댓가지불이 없었다면 나는 유사그리스도인인지 모릅니다.

"거의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도 변질된 메시지를 전했던 적들이 많습니다. 좀 강하게 헌신을 강조하고 싶은데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진리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거의 진리를 선포할 때가 있었습니다. 거의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만 하는 설교는 위험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특권은 알고 있는데 보냄을 받는 제자로서의 사도성을 전혀 모릅니다.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교회를 참된 제자 공동체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만약 제자 공동체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생길수록 그 자체가 공해요 소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제자는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주일날 예배 한번 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웬만큼 은혜를 받고 무장하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영혼의 치열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다시한번 잃어버리 제자도를 다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거의 제자가 아니라 참 제자가 되는 능력을 회복하십시오. 단순히 교회의 맴버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로 세상에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