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교회와 선교사의 안식년
한국 선교사의 대부분이 70년 말-80년 초에 파송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금쯤 안식년을 위해 귀국하는 선교사들의 숫자가 상당수 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식년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선교사들이 안식년으로 귀국하는 것을 기피하거나 아니면 한국 아닌 다른 나라로 안식년을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중에 중요한 몇 가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안식년 부재의 이유
첫째로 선교정책의 부재를 들 수가 있다. 선교정책이라 하면 한 선교 기관의 교리, 현지 교회를 포함한 타기관들과의 관계, 재정에 관한 사항, 지도력, 의결과정, 인사 관계 등에 대한 태도를 문서로 밝힌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선교정책이 있어야 선교사가 얼마동안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얼마동안 본국에 돌아와서 안식년을 가지면서 본부 사역을 해야 하는가를 선교사들과 선교행정 책임자가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선교정책이 없는 경우 주먹구구식의 행정을 함에 따라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돌아와 본국 사역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둘째로, 선교정책 내에 안식년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해도 국내 선교본부나 선교현지에서 이를 강조하여 시행하도록 주선하는 선교지도자가 없을 경우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 선교본부나 선교지에서 지도자는 선교정책을 기준으로 하여 선교전략을 수립하여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적절한 행정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행정체제가 갖추어진 선교현장에는 한 선교사가 언제 안식년으로 가야 되는가에 대한 계획과, 그가 없을 경우 누가 어떻게 그 일을 대행하는가에 대한 대책이 세워진다. 따라서 선교사가 안식년을 가게 되어도 그가 그때까지 해 온 사역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존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교지도자가 없을 경우 선교사가 안식년을 포기해도 이를 막을 길이 없다.
셋째로, 선교정책과 선교지도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선교사 자신이 안식년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서양 선교기관에서는 용납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부 선교기관 중 아직 선교행정체제나 선교정책이 없는 경우 선교사가 자기 의사대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엄격히 따져볼 때에 선교사는 선교기관의 지시를 받기는 받되 고용인의 입장은 아니다. 선교사는 자신의 모교회의 지원을 받아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선교기관에 들어와서 자발적으로 선교기관의 일원이 되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과, 선교기관의 정책과, 모교회의 의사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서 늘 살아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교기관에서 강력하게 명령해도 선교사는 그대로만 완전히 좇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과 모교회의 뜻과,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행동할 자율성의 폭이 어느 정도 부여된다. 그렇다해서 안식년을 자기 마음대로 무작정 미룬다든가 아니면 이유 없이 포기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에 현명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선교사가 안식년을 가지지 못하게 될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 등 때문에 도저히 현지를 떠날 수 없을 때가 있다. 비록 이런 경우라 해도 선교지도자는 일년에 몇 달씩 나누어서 여러 번 현지를 떠나서 충분히 재충전하고 돌아올 수 있는 방법 등으로 안식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피하는 이유가 본인이 없어서는 사역이 안될 경우 외에도 또 있다. 선교사가 한국에 돌아왔을 경우 받을 쇼크가 두려워서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선교에 대한 지식과 선교사 관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교사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지역 교회의 입장만 생각하여 무리한 요구들을 선교사에게 했을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 현지의 선교사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이런 경험을 갖고 있고 따라서 본국에서 안식년을 갖는 것을 기피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식년 부재의 결과
이상 어떤 이유에서든지 선교사가 안식년을 계속 기피했을 경우 선교사는 최소한도 세 가지 면에서 타격을 받게 된다.
1. 신체적 타격
사철이 분명한 곳에서 살던 한국 선교사들이 연중 계속 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열대 지방에서 장기간 안식년 없이 살 때에 풍토병으로 체력이 소모될 가능성이 있다. 현지에 적응이 완전히 되어서 신체적으로 별 지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 20여 년 그 지역에 살았을 경우 체질적으로 그 나라 사람처럼 되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30대에 이런 곳에 온 선교사 가족이 4-8년을 이런 열대지역에서 보내게 되면 말할 수 없는 소모가 있게 된다. 여기에다가 타문화와 타음식과 타언어 등이 가져다 주는 압력과 이질감을 더하게 되면 선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우리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선교사들에게 어찌 그런 압력만 있겠는가? 선교사에게는 사역에 대한 압력과, 모교회와의 관계로부터 느끼는 압력도 있음을 감안할 때 안식년을 통해 정규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지 않을 때 신체적으로 소모가 너무 많아서 회복이 어려운 단계까지 갈 우려가 있다.
2. 정신적 타격
이는 신체적인 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체적으로 계속 소모를 했을 경우 정신적으로 소모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했던 선교사라도 신체적으로 압력을 계속 받을 때 정신적으로 연약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선교사들의 지적소모도 적지 않다. 이들이 선교지에서 계속 지적으로 충전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데, 그럴 경우 사역 능력까지 저하되게 된다.
3. 영적 타격
선교지에서는 영적으로 선교사들을 충만케 해 줄 교회나 기관이 없을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항상 주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영적으로 냉랭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중에서도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공급을 받는 방법을 습득한 사람들은 계속 영적 건강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가면 신체적, 정신적인 타격이 영적인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영적으로 재충전이 없이 계속한다는 것은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안식년으로 온 선교사가 해야할 일
엄격히 말해서 선교사의 경우 안식년은 맞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즈음 어떤 선교기관에서는 "안식년"대신 "본국사역"(home assignment)으로 그 이름을 수정해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안식년의 선교사는 결코 쉬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는 것이 큰 요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귀국 후 한달 정도는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어야 하며, 떠나기 전 한달 정도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다시 임지에 돌아가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밖에도 선교사는 다음 사역을 안식년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로, 모교회와 지원교회 방문 및 보고이다. 이것은 어떤 한 기관이 총괄해서 선교사의 일정표를 짜주는 것이 선교사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 유익이다.
둘째로, 선교 지원금 모금이다. 약속했던 선교헌금이 도중에 취소되었거나 선교비가 더 필요한 상황 등을 고려하여 모금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로, 재교육이 필요하다. 다음 사역을 위하여 일정기간은 각종 세미나 등 필요한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신학교 등에 가서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한 학기 정도는 좋으나 전 기간을 공부로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지에 있는 일부 한국 선교지도자들의 의견이다.
교회 또는 선교기관이 안식년으로 온 선교를 위하여 해야 할 일
첫째로, 선교 지도자나 전문가가 선교사와 장시간 보내며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들어 주고 갖고 있는 상처나 갈등 및 의혹 등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국내에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알려줌으로써 국내에서 받는 쇼크를 줄인다.
셋째,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자녀의 경우 입국해서 문화 쇼크를 받고 다시 선교지에 가서 또 한번 쇼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최소한 줄여 줄 필요가 있다.
넷째로, 철저한 신체검사가 필요하다. 아픈 곳은 치료받고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병원에서 건강에 대한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로, 선교사가 머물 수 있는 거처를 준비하여 빠른 시일 내에 안정된 생활권에 들어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의 모든 것은 선교사를 위한 국내 관리(pastoral care)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선교 역사가 짧기 때문에 이와 같은 관리를 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어려운 현지 생활을 하고 모처럼 돌아온 선교사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선교지로 돌아가는 기현상을 초래할 수가 있다.
선교사의 안식년제도는 선교사 자신을 위해서나 한국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안식년을 맞아 돌아온 선교사 관리를 더욱 더 잘함으로써 선교사가 계속해서 선교지와 모교회에서 번갈아가며 20-30년에 걸친 장기적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